녹향
조웰과 헉슬리 본문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미래 사회를 예측한 두 선지자로 종종 비교되지만,
그들이 바라본 미래의 묵시록적사회는 다른 양상이다.
오웰이 말한 감시사회, 빅 브라더의 사회가 축을 이룬 듯싶더니
근래 들어 점점 헉슬리 예측이 힘을 얻는 듯하다.
그의 미래 터널의 전망을 한국 사회와 겹쳐 보면
그 미래 예측력에 송연해 진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얻고 있는가?
조웰과 헉슬리를 통해 조명해 볼만하다.
저명한 사회 비평가인 닐 포스트만의 비교입니다.(펌)
오웰은 미래 사회에서 책이 금지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화씨 451도’ (Fahrenheit 451)가 그린 디스토피아와 비슷합니다.
/헉슬리는 책을 금지할 이유가 없어진 사회를 염려했습니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을테니까요.
오웰은 정보를 차단하는 사회를 걱정했습니다.
/헉슬리는 도리어 너무 많은 정보를 퍼부어서 사람들이 그 속에 파묻혀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다만 수동적인 정보 소비자로 변해 버린 사회를 걱정했습니다.
오웰은 진실이 은폐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헉슬리는 그 진실이 진실과는 무관한 쓰레기 정보의 바다에 익사하는 상황을 우려했습니다.
오웰은 우리 문화가 어떤 단일한 체제와 사상에 ‘사로잡힌 문화’ (captive culture)로 변모할 것이라고 본 반면,
/헉슬리는 사소경박한 문화 (trivial culture)로 전락할 것이라 우려했습니다.
1984년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고통의 수단으로 통제되지만,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쾌락에 이끌리고 지배되는 세계입니다.
결론 삼아 말한다면,
오웰은 우리가 증오하는 것이 우리를 파괴할 것이라고 걱정한 반면,
헉슬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파멸로 내몰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여기에서 ‘사랑하는 것들’은
무슨 거창한 ‘영원한 사랑’이나
‘순수한 사랑’ 따위의 로맨틱한 대인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시도 떼어놓고 싶어 하지 않는 일상의 도구들, 수단들입니다.
아이폰, 아이패드, 스마트폰, TV 리모콘 같은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