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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들이야기

죽 이야기

綠香 2024. 5. 30. 16:12

( * 주말농장 콩심기 가는 굼튼 발걸음 사연 )

농번기에도
비 오는 날은
일없이 한가한
보릿고개 시절
밀가루 반죽으로
죽을 쑤는 날이면
꿈에 부푼다.

어린 시절
입안에 지맘대로
굴러다니는
꺼끌한 보리밥에
신물이 난 터라
그날의 죽 메뉴가
무엇이 당첨되어도
아랑곳없다.

도마 위에
밀가루 하얀 반죽이
어머니 손 안 밀대에
밀리고 당기어
둥글넓적하게
요술쟁이 솜씨를 펼치면
갖가지 죽그릇이 그려져
벌써 입안에
군침이 가득하다.

웰빙 시대 죽이야
감히 생각이나 하랴!
풀대죽
칼국수
생키죽
팥죽...
그 어느
죽 그릇이
당첨이 되어도
반찬이야 신건지 한 사발에도
투정 없이 배불둑 먹을 수 있음에랴!

돌고 돌아온
세월의 포구 이른 아침
칠순 창문너머
반갑게 맞이하는
보릿고개
밀가루 반죽으로 빚은
옛날 칼국수 그릇에 담긴
'오늘!'이
나를 반긴다.

'오늘'의 반죽을
마음판 도마 위에 올려놓고
몽당연필 밀대로 밀고 당기어
비록 서툴고 부족한 변신이더라도
늘 감사함으로 맞이하곤 한다.

♧ 히브리서( 히 ) 13장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8. 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and today and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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