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향
무등의 밤 본문
송강 정철이 넘었던
담양 매화천 식영정을 경유하여
고향다녀 오는 길은
으레 무등을 넘어 온다.
가르마 같은 길을 타고
무등을 넘다보면
할머니 두부집을 지나
영낙없이 콩내음이 진한 두부
묵은 김치에다 동동주 잔을 기울인다.
차창을 활짝 열어 제치고
숲과 나무와 대숲이 어우러진
향을 마음껏 음미하며
산마루를 넘으면 초라한 행색도
신선이 되는 듯싶다.
연이나 늦은 밤길이면
무등의 처녀성을 마음껏 흠쳐 보며
흥얼거림이 무등산(無等山)의 밤이 된다.
무등의 밤
감란 대지 치마
짙은 숲 저고리
천년의 산 향기에
실개천 허리띠 풀어 제치고
산천어 노니는 깊은 샘
달빛 산등성 가르며
빠끔히 내려다 뵈는 산마루
무등 치마 한 자락
바람이 가른 틈새로
속살 살짝 드러낸 산마을
할머니네
순두부 묵은 김치 동동주에
낙엽에 쌓인 아픈 세월 섞어
발목시린 순수함으로
가슴 저리도록 마시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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