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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야기

도루코 면도기

綠香 2013. 11. 19. 09:26

눈이 또랑또랑한

어리디 어린 누나의 딸

그 아이가 자라

동심 한 복판에 각인 된 부심(父心)

한낱 도루코 면도기 하나로

어린 시절 일찍 떠나버린

그윽한 부감(父感)을 체감하고

그 부성의 목소리까지 들으려하니

비록 고인인들 어찌 영면하지 아니 하겠는가!

어제는 그 애가

갓 출간한 시집을 보내왔다.

 

 

  도루코 면도기

 

                       정 란 희

 

오랫동안 투병 중이던 아버지 병문안 온

흥복약국 주인은

병이 다 나아서 다행이라 했다

 

거울 앞에서 면도 하던 아버지 손끝은 가늘게 떨렸고

그 모습 지켜보던 내 가슴은 두근거렸다

그러면 그렇지 밤마다

우리들 잠든 얼굴 들여다보며 내가 살아야 하는데

속삭이던 간절한 소망 들어 주신 게야

긴 둑길을 따라 함께 심었던 코스모스

달빛이 너무 고와 몸을 흔들고

강아지 메리와 복실이도

윗동 아랫동 온 동네가 시끄럽게 짖어댔다

 

며칠 후

아버지는 거짓말처럼

꽃상여를 타고 가셨고

떠난 자리엔 도루코 면도기만 남아 있었다

가끔 그날처럼 거울 앞에서

아버지 하신 것처럼 면도기를 들고 있으면

그만 다칠라 그리운 목소리 들린다

 

정란희

-한국문협 경기도부지회장

-한국작가협회 사무국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회

-기픈시 동인

-한국문인협회

 

시집 분수의 노래」 「작은 걱정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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