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향
바가지 이야기 본문
지난해
밭에 박을 심었다.
풀 섶에 박 넝쿨이 넝쿨째 달리다
하얀 꽃을 피더니 벌 나비들이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여름 땡볕과 비와 바람에
푸르스름한 하얀 박이 탐스렇게 영글어 갔다.
가뭄에는 물주고
익은 박 모양새 모가 날까 편편한 돌 받침 받혀주니
보름달처럼 둥근 박이 열렸다.
손가락으로 튀겨보아
돌 같이 영글었다 싶을 때 박을 따다
‘흥부 톱’으로 박을 잘라 냈다.
톱질이 서툴러 행여 한쪽으로 치우칠가
연필로 줄을 그어 자르니 영낙없이 반쪽 달 모양이다.
큰 솥에 푹 익혀 여름 햇볕에 말리니
옛날 어머니께서 쓰셨던 바로 그 바가지가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거실 진열장에 넣어두니
시골 뒤란 새끼줄에 주렁주렁 메어둔 바가지가 따로 없을 듯싶다.
어디 버릴 것이 있으랴!
박속은 긁어내니 여문 씨랑 함께 나온다.
씨는 골라내어 이듬해 씨종자로 말리고
나머지 속은 삶아 묵은 된장에 묻혀 밥상에 올리니
이만한 토속 어머니 밥상이 어디 있으랴!
조상들이
이승을 작별하고
저승으로 마지막 머나먼 길 떠날 때
우리 자손들은
살아생전 손때 묻은 바가지를 문턱에 올려놓고
바가지를 밟아 깨뜨리고 넘어간다.
바가지 깨뜨리듯 무덤을 열고
다시 환생하기를 바라는 자손들의 바램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아담의 ‘죄 바가지’가
그 분 한 사람의 대속으로
우리의 영혼이
영원한 환생을 한다면 어찌하겠는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