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향
설 덕담 본문
내일이 설이다.
세배 자리마다 덕담을 나눈다.
위 어른은 어른의 자리에서
아래 사람은 아래 자리에 걸 맞는 덕담을 나눈다.
덕담 역시 말이며 말은 바로 혀에서 근원을 찾는다.
말은 예나 지금이나 미물이든 영장인 사람이든 가릴 것 없이 소중함이 아니랴!
야고버서 3장 10절에 이르기를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하였다.
소도 말을 알아듣는다면 어찌되는가!
황희정승(1363~1452)은
세종대왕 때 무려 23년간 제상을 역임하였으며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본(민본) 철학을 바탕으로 선정을 베풀어
태평성대를 이룩한 분이다.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하여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74년을 관직에 90세까지 장수 하였다.
그의 인품과 덕망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전해온다.
젊은 시절 강직하고 의론이 날카로웠던 황희는 일찍이 암행어사가 되었다.
공이 어느 날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을 암행하는데 길옆에서 한 늙은 농부가 쟁기에
누렁소와 검정 소 두 마리를 함께 매어서 밭을 갈고 있었다.
공은 말에서 내려 길가에 앉아 농부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 두 마리 소 가운데 어느 소가 일을 더 잘 하오?”
하고 물었더니 농부가 쟁기를 놓고, 가까이 와서 공의 귀에 입을 대고는,
“왼쪽 누렁소가 일을 더 잘 합니다.”라고 속삭였다.
공이 웃으면서,
“그런데 왜 귀에 대고 소근 거리오?”하고 묻자 농부는,
“짐승이라도 서로 비교되는 것은 싫어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공이 그 말을 듣고,
“그럼 저 미련한 소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단 말이오?” 하고 되묻자 농부가, “설령 저 놈들이 아무것도 모른다손 치더라도 ‘이랴!’ 하면 가고, ‘워!’ 하면 멈추며, ‘이리!’ 하면 우측으로, ‘저리!’ 하면 좌측으로 향할 줄 아는데 어찌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농부의 말을 들은 공은 숙연한 마음으로 스스로 반성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미물을 대하는 데도 이러해야 하거늘 하물며 사람은 어떠하겠소? 노인의 말이 아니었다면 내가 경박함을 면치 못할 뻔했소. 앞으로 노인의 말을 약으로 삼아 주의하리다.”하였다.
공이 한 평생 겸손하고 어질고 너그러운 마음씨를 가지게 된 것도
이 암행어사 때 깊이 깨달은 바 있었기 때문이다.
위 일화에 등장하는 노인을 가리켜, 황희가 장차 국가에 크게 쓰일 인물이어 가르침을 주기 위해 나타난 신선이라는 말로 전해오고 있다.
세월도
인물도 가고
언제가는 사라지지만
말은 영원히 남는다.
역시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위 바퀴를 불사르나니」 (야고버서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