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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綠香 2024. 3. 1. 16:48

        이상화

나의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는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밭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썩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위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고 잘 자란 보리밭아 긴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도 기쁘게나 가자 바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돌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찍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럽도록 밞바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영혼아 무엇을 찿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픗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늘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누가복음( 눅 ) 9장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5. What good is it for a man to gain the whole world, and yet lose or forfeit his very 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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