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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호(號) 이야기

綠香 2013. 11. 25. 06:18

호(號) 이야기

  정년퇴임식 안내장마다 어김없이 이름 앞에 호(號)가 정형을 이룬다.  40여년 교직을 마무리할 무렵 돌아보니 나란 위인에게 있다면 오직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 세자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퇴임식은 하지 않기로 작심한 터라 굳이 호를 쓸 일도 없겠지만 나를 기억해준 분들이 세상 애경사에 초야의 백수(白手)에게 소식전할 주소라도 전하려 보니 그 흔한 ‘호(號)’를 생각하게 되었다. 몇 군데 호를 검색하여 보니 자신을 구이지학(口耳之學)이라고 겸손해 하며 호를 짓는 기준을 4가지로 소개한 어느 브로그를 만나게 되었다.


호를 짓는 기준을 4가지로 대별하면,

소처이호(所處以號) 

― 생활하고 있거나 인연이 있는 처소를 호로 삼거나

소지이호(所志以號)

― 이루어진 뜻이나 이루고자 하는 뜻으로 호를 삼거나

소우이호(所遇以號)

― 처한 환경이나 여건을 호로 삼거나

소축이호(所蓄以號)

― 간직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것을 호로 삼는다.


  이 중에 마음에 남는 것을 근거로 호를 짓는단다. 내용을 살펴보니 ‘처․지․우․축(處志遇蓄)’이 핵심인 듯하다. 그 분은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인다. 호는 그 사람의 취미나 성격, 능력 등을 반영하는 데 이름과 자(字)는 부모나 연장자가 지어주지만 호는 본인이 스스로 자유로운 정서를 반영하여 짓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란 위인에게 걸어온 행보에 ‘처․지․우․축(處志遇蓄)’의 인연이 될 만한 일이 어디 있었으랴! 그러나 잠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걸어온 행보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으로 걸어왔다면 앞으로 걸을 백수의 행보는 내 스스로 지은 이름으로 걸으며 보은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로이 탄생한 이름이 바로 ‘녹향(綠香)’이다. 굳이 ‘처․지․우․축(處志遇蓄)’의 인연을 붙이면 녹(綠)은 녹색이요 생명의 상징이라 한다면 향(香)은 향기요 말씀의 상징으로 삼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녹향(綠香)’이 바로 ‘생명의 말씀’이 되지 않겠는가! 세상의 짧은 재주로 뒤돌아 볼 틈도 없이 걸어온 빚진 행보들이 이제는 생명의 참 빛으로 빚 갚는 거듭나는 길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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