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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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선물 이야기
어느 해 추석! 아는 분으로부터 사과 선물을 받았다. 무공해 친환경 사과로 껍질을 깎지 않고 그냥 물에 씻어 먹으면 아삭 아삭 감칠맛이 난다는 주석까지 친절히 안내를 해 주었다.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에 고향 산소에도 다녀오고 어른신도 찾아뵙고 어울리다 보니 사과는 뒷전이 되었다. 북새통 귀성길의 뉴스거리도 잠잠해 지고 대명절의 분위기도 가라앉을 즈음 가족과 함께 식사 후식으로 사과를 챙기다 보니 아연실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공해 친환경 사과라는 기대와는 달리 사과상자 안의 사과는 절반 이상이 벌써 멍이 들거나 썩어 있었다. 몹시 속이 상했다. 선물을 보내준 분의 성의를 보아서도 건전한 소비문화 활성화를 위해서도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상자에 적혀있는 생산자의 인적사항과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했다. 전후 자초지종 얘기를 들은 oo 사과농장 주인은 답은 이러하였다. 조생종인 무공해친환경 사과는 가급적 냉동보관이 하여야 하며 그러한 보관상 유의사항을 사과상자 겉에 표시하였다는 것이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유심히 살펴보니 역시 보관상의 주의사항이 표시되었다. 그러나 추석명절의 가족 분위기나 일정에 말려 낱낱이 살펴볼 수 없었고 유통과정에서 기일이 경과한 것이 이러한 결과를 자초한 셈이다. 그러한 상황을 이해한 oo 사과농장 안주인 되신 분이 그 때는 출하가 거의 끝나는 형편이어서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내년 추석 무렵쯤 사과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 때 그 심정으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싶었는데 주인의 성의 있는 답변에 마음이 누그러져 꼭 변상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 1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사과파동’은 완전히 잊혀 진 세월이 되어 또 다시 추석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 택배원이 배달한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추석선물을 전달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내는 사람을 알 수가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과상자에 적혀 있는 보낸 고객주소 ‘전북 장수군’을 보고 직감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상자를 열어 보니 아니라 다를까 지난해 ‘사과파동’으로 전화통화 했던 oo 사과농장 그 분이 보낸 ‘추석선물’이었다. 사과상자 안에 노트 한쪽에 정성들여 쓴 편지도 들어 있었다.
“ 안녕하세요!
지난 해 약속드린 홍도사과 이제 수확했습니다.
기상악화로 품질은 다소 떨어지지만 맛은 괜찮을 거예요.
꼭 냉장 보관해 드세요. 여름 과일이라 신선하게 보관해야만 하거든요.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한표사과농장 000 드림 ”
목포인근 조그만 터전 밭에 고추며 오이, 방울도마도, 호박, 가지 등을 심어놓고 틈나는 대로 밭일을 운동 삼아 해보고 있다. 해가 더 할수록 심고 가꾸고 거두는 농사일이 바로 살붙이 자식 살피는 일 같아만 진다. 농사일은 한낱 농사일이 아니다. 비오면 비온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대로, 햇살이 내리면 햇살내리는 대로, 낱알마다, 열매마다, 나뭇가지마다 수많은 대화와 몸짓으로 농사꾼과 곡식들판이 하나가 된다. 한 해 동안 지열을 안고 보살피다 보면 영혼을 안은 자식이 된다. 한표사과농장 이영숙님은 그렇게 한 해 동안 자식 보살피듯 땀 흘려 정성들여 가꿔온 ‘사과자식’을 비운 마음으로 살맛나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어쩌다 세태를 쫒다 보면 불경어수(不鏡於水 :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에게 비추어 보아야 하는 일)를 잊고 살기 쉬운 오늘을 사는 각박한 세상에 청량한 바람이 되어 온다. 「높게 크게 말하는 사람들」이 이 소박한 얘기들을 경청하였으면 얼마나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인가! 단풍이 물들 때 쯤 가족 나들이라도 나서면 장수군 장계면 한표사과농장에 들려 꼭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혹시나 그 분에게 누가 될까 염려됩니다만 순수한 마음으로 이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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