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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야기

릴케 그리고 김현승

綠香 2013. 10. 21. 08:37

 김현승이 13세 유년시절에 릴케는 이미 고인이 된다.

세월의 간격이 상당하지만 가을이 릴케 김현승이 되고 릴케 김현승이 바로 완숙한 가을이 되는 것은 두 사람 모두 가을의 시성에 비롯함이 아닌지! 가을이 왔다 가는 길목에 한두 번 만난 것이 아니지만 그 때 마다 감회가 다르다.


김현승(1913~1975) 

호는 다형(茶兄) '가을의 시인', '고독의 시인'으로 불리며 지성적 감성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을의 기도‘ 는 가을을 맞이하여 내적 충실을 갈망하는 시인의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기도 형식의 작품이라고 한다. 시인은 가을의 고독감 속에서 겸허해진 마음으로, 그 동안 살아온 지난 인생을 돌아보며 삶의 참다운 가치를 추구하고, 더욱 경건한 삶을 바라보고자 한다.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오스트리아의 시인이며 소설가, 체코의 프라그 태생으로 신낭만파의 거성이다. 러시아에 여행하여 정신적 영향을 받고 파리에서 로댕의 비서를 한때 지내기도 했으며 인간 실존의 본원적인 고독과 불안의 세계를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가을날'은 릴케의 종교적 신비주의에 바탕을 둔 구도자적인 서정시다. 가을의 계절 감각을 인생에 연결시킴으로써, 고독의 깊은 의미를 표현한 작품이다.


 

           가을날

                                                    릴케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일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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