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시이야기 (58)
녹향
하늘 땅 사람 함께 숨쉬어 봄이 여름밭 씨앗 심고 여름이 가을 밭두렁 무르익혀 가을이 겨울살이 열매 맺어 겨울이 봄 기다림 씨알 품으니 하늘 땅 사람이 하나 되어 생명의 빛이라
바람과 억새 바람 스치는 흔적 억새 온 몸으로 뒤척이는 바람의 춤 억새 부르는 노래 바람이 긴 휘바람 빈 하늘 채우는 억새의 노래 바람이 억새 되고 억새가 바람 되어 흰소매 날리는 춤사위 노래
봄새 초록의 생명 땡볕에 달구어 그토록 눈부신 청하의 숲 이루더니 하늘이 내린 이슬 아침마다 가슴에 시리게 적시어 어느새 푸르디 푸른 그 애띤 얼굴 세월의 황혼으로 곱게 물드네
붓도 종이도 없이 그림을 그린다 마음의 화선지에 생각의 붓을 들고 마음을 그린다 밴드 성경으로 형제가 연합하는 아침을 그린다 GX룸 탁구장 백공의 선율로 정중동을 그린다 영산강 따라 바이크 달리고 달려 익어가는 가을을 그린다 손바닥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 뿌려 땀의 흙을 그린다 남창천 둘레길 맨발로 걷고 걸어 물속의 달빛을 그린다 오늘 또 하루 빈 화선지 말씀의 붓으로 은혜의 그림을 그린다
애초에 하나인 것을 지나가는 나그네 마다 보름달 초승달 그믐달이라 하네 모든 것이 스멀저 가는 시간 애오라지 홀로 대지 화선지 위에 은빛 생명의 연서를 남기나니 둥글지 않는 직선도 원의 근원이요 소리 없는 정적도 소리 없는 큰 외침이며 행여 움직이지 않는 쉼도 멈춤이 아님이요 지나가는 구름도 흔적일 뿐 하나를 둘로 만들 수 없음이라! 애초에 하나인 것을 지나가는 나그네 마다 이름 지어 부름은 어제의 거울에 또 다른 모습을 조영하는 또 다른 사람의 모습일 뿐. 乙酉 새해 아침(05. 01. 03)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말 중평재 숲에 바람이 일면 숲은 말을 한다. 그 넉넉한 말은 사람의 소리를 부끄럽게 한다. 말하는 유일한 짐승이 숲과 바람의 음성에 입 다문다. 오늘도 숲은 말을 한다 사람답게 살면서 말을 하라고
사랑하는 까닭 한 용 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