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향
사치분교 농구 이야기 본문
사치분교 농구 이야기
지금은 기억 속에 사라진 사치분교 농구팀!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2시간 남짓 가야 도착할 수 있는 신안군 안좌초등학교 사치분교가 농구의 기적을 일으켰다. 소년체전이 한창 붐을 일으키고 있던 지난 1972년도에 사치분교 농구팀이 전남도 대표로 전국소년체전에 출전했다. 사치분교는 1970년대 전교생이 60여명 정도의 적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농구단을 육성하여 1972년 제1회 전국소년체전에서 농구 남자부 준우승을 차지했다. 사치분교의 농구 준우승은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켜 <섬개구리만세>영화로까지 제작됐다. 나중에 지도교사와 농구부 선수들 전원이 청와대에 초청되었고, 사치도에 선착장이 조성되어 전라남도에서 디젤엔진 도선배를 건조해 주기도 했다.
조그만 낙도 섬의 분교 농구팀이 전남도를 대표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든 일이다. 예비후보도 없는 12명의 선수로 도시의 아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뛰었다. 12명은 이 학교 5,6학년 중 조금이라도 농구를 할 줄 아는 학생을 선수로 뽑아 만든 팀으로 도시의 웬만한 골목 농구팀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도시에서 제대로 농구를 한 아이들보다 체격이나 신장이 훨씬 작았던 사치분교의 농구선수들은 오로지 투지로 훈련하고 시합에 출전하여 도시의 명문의 팀들을 이겼다. 결승에 올랐을 때는 부상을 입지 않은 선수가 없을 정도로 지친 나머지 결국 준우승에 그쳤지만 그들은 작은 힘으로 모두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사치분교 농구팀의 이야기는 <섬개구리 만세>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또 한 번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오늘날 디지털문화 안방에 심약한 우리 청소년들을 보면서 무엇을 마음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까? 사치분교 농구팀의 준우승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농구를 잘해서가 아니라 모두 한마음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내일의 주인공인 청소년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잠재되어 있는 끼를 발견하고 그 끼를 땀으로 일구어 꿈을 이루어 주는 일은 우리 가정과 사회 국가가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